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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21세기 자본 간략 소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현대 자본주의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입니다. 그는 자본수익률(𝑟)이 경제성장률(𝑔)을 지속적으로 초과할 경우, 부의 집중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글로벌 부유세와 같은 급진적인 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피케티의 연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며,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적합한지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판 1: 불평등이란 정말 안 좋은 것인가?
불평등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일까요? 인류 역사와 인간의 원시 본능을 이해한다면, 단순히 평등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훨씬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컨대 조선 시대의 왕조차도 현대인이 누리는 기술과 편리함(자동차, 인터넷, 의료 혜택 등)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삶의 질 향상이 불평등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인류가 수렵 채집 사회에서 살던 시절에는 자원 배분이 상대적으로 평등했습니다. 누군가가 더 많은 것을 가졌다면, 이는 다른 누군가의 몫을 빼앗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시의 생산성은 모두가 풍족하게 누릴 수 없을 정도로 낮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형성된 본능은 현대까지 이어져,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등을 본능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대체로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피케티는 부의 집중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하지만, 불평등이 반드시 불행을 초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혁신을 촉진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며, 각 경제 주체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그에 합당한 보상을 얻는 태도를 장려하는 것입니다. 불평등 그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경제 체제가 개인과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비판 2: 왜 불평등이 발생하는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그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불평등을 논할 때도 그 발생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불평등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가 남들에게 더 큰 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맛집의 주인이 큰 부자가 되는 이유는 단순히 운이 좋았거나 자본이 많아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맛과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 큰 만족을 주는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하게 되고, 이러한 선택의 집중이 결국 불평등을 만들어냅니다.
만약 불평등을 없애겠다는 명목으로 부유한 사람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든다면, 누가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려고 할까요? 혁신과 창의성은 보상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발휘됩니다. 불평등은 단순한 부의 편중 현상이 아니라, 시장 경제에서 경쟁과 선택을 통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입니다.
따라서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접근이 단순히 인위적인 재분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각 경제 주체가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도록 장려하고, 이를 통해 전체 사회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불평등은 억제해야 할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비판 3: 자본수익률과 노동수익률의 구조
피케티는 자본수익률(𝑟)이 노동수익률(𝑔)을 초과하는 구조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는 노동수익률과 자본수익률의 본질적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노동수익률은 시간과 생산성의 함수입니다. 노동의 수익은 근무시간 × 시급으로 결정되며, 근무시간은 물리적 한계를 가지는 반면, 시급은 노동생산성에 비례합니다. 문제는 모든 노동자가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거나, 설령 노력하더라도 생산성 향상에는 기술적, 환경적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 자본수익률은 자본금 × 수익률의 형태로 결정되며, 노동수익률과는 다르게 제한된 시간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점은, 자본수익률이 지속적으로 무위험이자율(예: 국채 금리)보다 낮아질 경우, 투자자들은 해당 자본을 다른 생산적인 곳으로 이동시킬 것입니다. 이는 자본 시장에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만드는 기본 원리로, 결과적으로 자본수익률이 장기적으로 노동수익률보다 높게 유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피케티의 주장은 자본과 노동의 본질적 차이를 간과하고 있으며, 자본수익률이 높은 것이 곧 부정적인 불평등의 증거라는 단정은 현실적인 경제 구조를 반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본 수익성이 높게 유지되는 구조는 혁신을 촉진하고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는 핵심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무엇이 진정한 문제인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불평등을 단순히 수치적으로 분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불평등이 존재하는 이유와 그 결과가 진정한 문제인지 여부입니다.
삶의 질 향상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이며, 불평등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본질을 놓치고 있습니다. 21세기 자본은 흥미로운 분석을 제공하지만,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부족합니다. 불평등의 원인을 이해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피케티의 주장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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